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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꼬 야설 -완결- (연재중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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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뻔했다. 상투적인 전개였다. 다 잡은 사냥감을 다루듯 느릿하게 툭 떨어진 로터를 집어 드는 그의 손짓이 파노라마처럼 눈 앞에 펼쳐졌다. 그 일련의 과정을 망연히 응시했다. 사고가 멈춘 것처럼 더 이상의 아무런 말도 떠오르지 않았다.

비난조의 말도 아니었다. 그저 어딘가에 적힌 사실을 그대로 읊듯 단조롭게 이어지는 음성이 가슴에 아프게 박혀들었다. 눈시울이 붉어진다.

그는 무서울 정도로 제 취약한 부분을 노련하게 파고들었다. 그의 말에 설득력이 더해지는 것 같은 착각이 일었다. 속옷은 그저, 고풍스러운 제 취향이 들어간 레이스일 뿐이었는데. 학생 속옷은 제 취향과는 안 맞아서, 그래서... 그 누가 감히 자신의 속옷을 보고 품평할 거라고 생각이라도 했겠는가. ... 정말로? 정말 자신은.......

피어오르기 시작한 의심은 급속도로 정신을 망가뜨렸다. 차라리 고문을 하고, 고통으로 자신을 주무르려 하면 눈 하나 깜짝 안 했을 것이었다. 이런 식의 성적인 파고듦은 전례가 없었으며, 따라서 무척 취약했다.

"하으, 큿......!"

잔뜩 흐려져 있던 초점이, 심연으로 가라앉았던 정신이 날카로운 고통에 강제로 분명해졌다. 뭐, 뭐... 등 뒤로 들려오는 만족스러움을 품은 음성에 퍼뜩 주변 상황을 인지한다. 자신은 엉덩이만 쳐든 채 엎드린 상태였고, 차가운 바닥에 뺨을 뭉개고 있었다. 그리고...

"아아, 아! 아아! 싫, 그, 으만...!"

격통이 자신을 꿰뚫었다. 기이한 자세로 점점 깊어지는 삽입이 자신을 두 쪽으로 가르는 듯 했다. 커다란 손에 머리가 눌린 채 바둥거린다. 손톱을 세워 창고 바닥을 긁었다. 배가 그의 성기 모양으로 튀어나올 정도로 빠듯히 안쪽을 채운 상태는 숨 쉬기도 버겁게 했다.

"하, 으, 크, 흐으."

짐짓 상냥한 종용이 끼쳤다. 소름 끼치는 저음과 함꼐 머리를 짓누르던 손이 턱을 감싸쥐어 돌린다. 차마 직시할 수 없는 상황에 놓인 자신은 선택권이 없었다. 눈을 내리감음으로써 외면한다. 고통으로 눈가가 경련했다.

다감한 자신의 연인. 자신은 그가 아닌 남자를... 둘이나 몸에 품었다. 이래도 괜찮은 걸까. 참담한 심정에 가슴이 무너져내린다. 눈을 감았지만 자꾸만 자신을 일깨우는 격통이 제 처지를 망각치 못 하도록 했다. 살면서 이토록 스스롱 몸이 원망스러울 때도 없었다. 고루한 생각이지만, 정조를 잃은 자신은 자결할 수도 없다. 나는... 나는, 어떡해야.

감은 눈가로 투명한 눈물이 맺혀 뺨을 타고 흘렀다. 이 상황에서 벗어나면, 그에게 이별을 고하자. 그가 상처받지 않도록. 저 혼자 그를 가슴에 품자. 떨리는 눈꺼풀이 서서히 들어올려졌다. 흐리게 젖은 눈동자엔 체념이 서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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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심경의 변화가 있었는지 그의 사납던 기세가 누그러졌다. 투박하게 힘으로 쑤셔박기만 하던 행위가 변모한다. 한결 부드러워진 몸짓에 격통은 덜해지고 그만큼 쾌감이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그럼 좋은 것 아니냐고?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끔찍하다.

고통에 사로잡혀 있는 동안은 남자와 정을 통하고 있다는 상황이 아닌 저항할 수 없는 폭력에 노출된 상황이라고 생각할 수 있었다. 비명을 지르는 동안은 오롯한 피해자가 될 수 있었다. 그렇지만, 하지만, 나는, 지금.

"하, 흐으..."

몸 위로 무게감이 느껴졌다. 어느 새 돌아누워져 천장을 향해 눕고 있는 자신의 품에 그가 기대온 것이었다. 긴장한 듯, 충족감을 느끼듯, 목덜미에 더운 숨을 불어넣는 그에게 반응한 제 몸은 따라서 단 숨을 토해냈다. 그를 안아주고픈 충동이 불쑥 고개를 쳐든다.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있던 두 팔이 움찔했다. 반사적으로 그렇게 움직인 손끝부터 강하게 바닥에 붙였다. 격렬한 거부감이 가슴을 짓눌렀다. 내가, 미치지 않고서야. 순간 알량한 동점심이라도 들었던 걸까. 엄연한 피해자는,

"앙! 아...?"

자신인, 데...? 몸이 크게 들썩였다. 머리 끝에서 발끝까지 전기가 찌릿 올랐다. 강렬한 쾌감에 머릿속이 하얘졌다. 그간의 사고가 날아갔다.

"너, 그, 힉! 그 말, 은, 아, 앙! 아아!"

몇 번 해봐도 기분 좋다는, 빈 공간에 단숨에 들어찬 그의 말은 천둥처럼 머릿속에 메아리쳤다. 따로따로 떨어져 있던 조각들이 맞춰진다. 계속 들던 기시감, 몸이 분명하게 기억하는 남자의 몸. 목소리. 체취까지... 생각은 길게 이어지지 못 했다. 끊임없이 밀려들어오는 쾌감을 감당하는 것만도 벅찼다. 말을 길게 할 수록 칠칠맞은 신음을 흘려대는 것에 대화를 포기했다. 강제로 당하고 있는 자신이 그런 소리를 내고 있다는 것 자체가 무척이나 부끄러웠다. 입을 꾹 다물었다.

"으, 흣. 흐읏! 아, 하. 응, 츠으, ... 으응!"

간신히 버티고 있는데, 그가 또 입을 맞춰왔다. 간헐적으로 터지는 신음은 그의 침입을 허용하고, 흘러들어오는 그의 타액마저 버겁게 삼켜냈다. 채 다 담지 못한 타액이 입가를 타고 흘렀다. 잔뜩 붉어진 채 위아래로 그를 받았다.

사위가 조용한 만큼 야살스런 물소리만이 공간을 채웠다. 그것은 제 아래를 드나드는 그의 남성과 상냥한 키스를 더욱 생경하게 느껴지도록 했다. 귀까지 범해지는 듯한 착각이 일었다. 자신은 정말로, 어느 한 곳도 빠뜨리지 않고 그에게 탐해지고 있었다.

"... 하악, 앙! 흐앙...!"

짓궂게도 부러 자신의 얼굴을 한 마디로 일축하며 사실로 짚어준 행태에 몸이 크게 반응했다. 허리가 크게 휘었다. 발끝이 오므라든다. 그의 지적과 동시에 감도가 오른 몸은 괴로울 정도로 느끼기 시작했다. 그전까지 조금이나마 느껴지던 고통이 지워졌다. 달큰한 교성이 터져나온다. 강하게 느낄 때마다 질벽이 수축하고, 그의 남성을 꽉꽉 옥죄였다. 결국 그가 자궁구마저 뚫고 들어오자 탄성을 터뜨린다. 바르르 떨며 계속해서 절정에 달했다. 그에게 손이 잡혀 있어서 다행이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자신은 두 팔을 뻗어 그에게 안기며 매달렸을 테니까. 남들... 특히 남자는 그저 반항을 위한 몸짓으로 알 테니 다행이었다.

"흐응, 응... 안 돼... 흐윽......!"

잔뜩 고조되어 흥분한 것이 느껴지는 그의 낮은 음성이 통보해왔다. 일말의 남은 이성으로 고개를 저으며 거부를 표현하지만 맥아리 없는 가는 목소리는 그대로 흩어졌다. 의지와 따로 노는 몸은 그를 좀 더 깊게 받으려 허벅지가 뻐근할 정도로 다리를 넓게 벌렸다. 몸 안쪽으로 뜨거운 정액이 퍼지는 것을 느끼며 자신은 그렇게, 한번 더 절정에 달했다. 소리도 내지 못 할 정도로 강렬한 쾌감에 흠칫 흠칫 경련한다.

후희에 잠긴 몸이 추슬러지기까지 한참의 시간이 걸렸다. 그동안 옷을 다 챙겨입은 그는 수줍은 모양새를 하곤 제게 말을 걸었다. 마치, 마치. 고백이라도 하듯이.

"......."

그의 말에 망설이는 것처럼 침묵을 지켰다. 하지만 속으론 전혀 다른 생각이 이어졌다. 난데없이 납치하여 자신을 범한 남자와 이 눈앞의 남학생은 동일인물이다. 쾌락에 취해 자신이 무슨 말을 했는지도 모르는 그는 그 사실을 제게 들켰는지도 모르는 것 같았다. 그러니 발신자 표시 제한으로 제게 문자를 보내놓고 이제 와서 번호를 묻고 있는 것이겠지.

들켰는지 모르는 것은 둘째치고 그는... 수줍은 남학생과 거친 협박범을 분리하고 싶은 듯 했다. 장단에 맞춰줘야 할지, 말지 고민이 되었다. 만약 눈치챘다는 걸 그가 알게 된다면... 지금 제 앞에서 뒤집어쓰고 있는 사랑에 빠진 남학생의 얼굴 순식간에 벗어 버리고 저번 밤의 거친 지배자가 되어 자신을 찍어 누르려 하겠지. 판단은 빠르게 들었다.

"... 아무 옷이라도 가져다 주면. 네 체육복이라도 상관없어."

자신이 무슨 짓을 했는지 제대로 된 자각이 없는 건지, 아직 자신에겐 연인이 있다는 것도 잊은 건지. 썸이라도 타려는 듯 구는 저 태도를 일단은 이용하기로 했다. 헐벗은 몸을 두 팔과 다리로 가리며 같은 반 친구를 대하듯 평소처럼 굴며 의뭉을 떨었다.

"그리고..."

아무렇지 않음을 가장하고 말하던 얼굴이 다시 붉어진다. 저 남학생이 그 협박범인 만큼 요구를 잊은 채 굴어선 안 됐다. 순종적인 태도를 보여야 했다.

"아까 가져갔던... 거, 돌려줘........"

로터를 말함이었다. 말하는 얼굴은 결국 새빨개지고 돌려달라고 말하는 부분 즈음엔 목소리가 거의 들리지 않았다.

"사정이 있어. 절대, 절대 내가 원해서, 그러는 게 아니야. 네가 생각하는 그... 런거, 아니라고."

그도 알고 있을 터였다. 자신이 그의 요구에 어쩔 수 없이 따르는 것이라는 걸. 그런데 오늘 남학생의 탈을 써서는 자신을 매도했다. 그가 원하는 게 뭔지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자신의 처지를 알고 있으니, 제 마음이 약해지고... 그에게 의지하기를 바라는 거겠지.

깨달음과 함께 눈을 꾹 감았다 떴다. 그는 노련한 사냥꾼이었다. 정신 바짝 차려야 했다. 정말 휘둘리면 안 된다. 눈 깜짝할 새에 잡아먹힐 수도 있었다.

눈 앞의 남자에 대한 생각으로 머릿속이 가득 찼다. 무언가 떠올려야 하는 게 있었던 것 같은데, 쉬이 떠오르질 않았다. ... 지금은 눈 앞의 상황에 집중하자. 지금 난 여유가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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